도배를 하면서
저의 유학시절에 쓴 시 한편을 올립니다
어제 음악회를 마치고 반주자님도 독일로 떠나는 마당에 옛날 생각을 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도배를 하면서
정 덕 기
서른 해를 너머 살아오면서
세상천지에 처음 도배를 한다.
내 땅에서도 하지 않던 짓을
독일 땅에서 하자니
그 또한 신나는 일이라
연신 콧노래를 흥얼대며 풀칠을 한다.
방은 몇 해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는지
비가 새어 썩고 바랜 자욱과
싸아한 곰팡이 냄새만이 가득하다.
낡고 썩은 壁紙를 쭈욱 뜯어내니
흰 횟가루가 내 머리위에 떨어지는구나.
횟가루가 등천을 하는 방구석에서
새 벽지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잘 붙도록 몇 겹이고 풀칠을 한다.
이제 虛한 겨울밭에 벽지를 바를 차례구나.
점 점 곰팡이 짙은 헌 壁이 사라진다.
점 점 눈밭같은 새 壁이 몰려온다.
누가 나의 썩은 벽을 걷어내 줄 것인가.
누가 나를 눈부시게 맑은 벽지로 도배해 줄 것인가.
덧없는 망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이제 들었던 저녁노을을 내려놓으니
아, 방이 너무 깨끗하구나.
이제 새 사람이 들어와 살겠구나.
1988년 겨울
어제 음악회를 마치고 반주자님도 독일로 떠나는 마당에 옛날 생각을 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도배를 하면서
정 덕 기
서른 해를 너머 살아오면서
세상천지에 처음 도배를 한다.
내 땅에서도 하지 않던 짓을
독일 땅에서 하자니
그 또한 신나는 일이라
연신 콧노래를 흥얼대며 풀칠을 한다.
방은 몇 해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는지
비가 새어 썩고 바랜 자욱과
싸아한 곰팡이 냄새만이 가득하다.
낡고 썩은 壁紙를 쭈욱 뜯어내니
흰 횟가루가 내 머리위에 떨어지는구나.
횟가루가 등천을 하는 방구석에서
새 벽지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잘 붙도록 몇 겹이고 풀칠을 한다.
이제 虛한 겨울밭에 벽지를 바를 차례구나.
점 점 곰팡이 짙은 헌 壁이 사라진다.
점 점 눈밭같은 새 壁이 몰려온다.
누가 나의 썩은 벽을 걷어내 줄 것인가.
누가 나를 눈부시게 맑은 벽지로 도배해 줄 것인가.
덧없는 망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이제 들었던 저녁노을을 내려놓으니
아, 방이 너무 깨끗하구나.
이제 새 사람이 들어와 살겠구나.
1988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