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그리운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영남마산 6월 우리가곡부르기 행사에서 배우는 노래에 임진강(오숙자 작곡 경동호 최명우시>이 들어 있어 임진강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김경선 원장님은 6월에 <두고 온 내 아들아>와 <임진강>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선곡하신 거 같다.
내마음의 노래 회원들이 전체적으로 천명 안팎일 때 동호회원들의 2002년 송년의 밤이 12월에 있었고 그 때 오 교수님이 처음으로 동호회원들의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작곡가가 아마츄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회원들에겐 큰 기쁨이 되고 가곡사랑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타오르게 동기를 부여해 주셨고 동호회원들과 똑같이 낮은 자세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 회원들은 오 교수님을 구심점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초 가객님이 오 교수님의 노래<임진강>을 듣고 거기에 답시를 남겨두었었고 급기야 교수님은 그 답시로 제2 임진강을 작곡하시게 되고.. 그 당시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글을 올리게 되고 해외에 사는 교포들까지도 그 일에 박수를 보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을 다시 돌이켜보면
...........................
존경하는 오숙자 교수님께 (바다의 글)
오 교수님!
저는 오늘 ‘늘 푸른 바다님께’라는 쪽지 하나를 받고 마치 몰래 짝사랑하던 총각이
보내온 편지를 받은 것처럼 얼마나 가슴이 뛰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만남을 갖게 되는데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좋은 만남도 드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중의 장애를 갖고 있던 헬렌 켈러가 설리반이라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누구도 포기했던 장애를 이겨내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전령사가 되어
전 세계의 모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든지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서
바보가 아닌 똑똑하고 용맹스런 장군이 된 일이나.......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만남이 너무나 많이 있겠지요
저는 지난 번 교수님의 ‘임진강’을 들으며 가객님의 시를 읽게 되고
또 그 밑에 교수님의 답글을 읽게 되었지요.
임진강
경동호 최명우 시 오숙자 작곡
해뜨는 동녘에서 달지는 서쪽으로
이 강산 한허리를 넘실대는 임진강
청산에는 마을 서고 들판에는 풍년들어
굽이굽이 고향인정 저멀리 노을진다.
지금은 슬픈 시절 피리소리 어디갔나
휴전선 가시밭길 울며가는 임진강
이곳은 남쪽이요 그곳은 북녘인가
그리운 고향소식 실어오는 임진강
푸르른 물 무심해도 가이없는 망향노래
소먹이는 아이들도이제는 늙고 없네
지금은 슬픈시절 피리소리 어디갔나
휴전선 가시밭길 울며가는 임진강
☆후렴
아! 아! 강남제비 날아가고 기러기 날아오듯
훨훨훨 훠얼 오가는날 언제이리 그 언제이리
<가객님의 답시>
수천년
고요한 아침을 노래하던
빛나는햇살도 물결에 잠기고
푸르른 빛살도 물살에 쓸리고
단장의 통곡만아 끝없이 흐르네
어이하여
아름다운 이 강토의 허리를 자르는가
순박한 우리겨레의 가슴을 끊는가
수십년 애통의 세월을 흘러가는
서러운 운명이여 비탄의 강물이여
<오 교수님의 답글>
가객님의 절절히 사무치는 답시가 가슴을 일렁입니다.
임진강 후편으로 작곡하고 싶습니다.
가객님은 바로 제2의 창작을 해 주셨어요.
참 기쁩니다.
오 교수님은 임진강에 답시를 보시고 아마츄어 동호회원의 글로 또 하나의 임진강을 작곡하시고
그 해 4월 문호리 집으로 회원들을 초대하셔서 <임진강2> 시연회 겸 집들이를 하셨다.
나는 그 두 분의 만남과 <임진강2>가 탄생됨을 축하하는 시를 써서 시연회가 열리는 시간에 보냈다.
나도 그 당시는 등단하지 않았었고...
지금 문호리에선 제2 임진강 흐른다
지금 문호리에선
너와 나의 가슴 사이에
화해의 파랑을 일으키며
마지막 비탄의 노래되어
제2 임진강이 흐른다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문호리엔
수녀원의 聖召 같은
침묵의 부름 하나 있었다.
하얀 수건 머리에 이고
수녀 같은 마음으로
머문 목련꽃처럼 합장하여
간절히 새벽기도 드릴 때
열려진 가슴엔
올림픽 성화처럼 타오르며
제2 임진강을 노래하라는
거룩한 사명 하나
까만 레일 같은 오선 위로
빨래처럼 널어지며
줄을 서던 음표들이
허리 잘린 강토 민족분단을
아파하기 시작했다.
갈라진 슬픔이 너무 커서
차마 부르지 못한 노래가
농아의 노래되어
몸부림칠 때
선비처럼
다가온 한 歌客
레일 같은 오선 위
농아의 노래에 말을 붙였다
말문 열린 노래 들으려
산새들은 가던 길 멈춰
나뭇가지에
새 둥지를 틀고
지나가던 바람이
햇순을 내민 나뭇가지에
살포시 단잠을 잔다
봄 지나면 저 새는
그 노래 가슴에 담아
북녘으로 날아갈까
여름 지나면 북녘의 새
그 노래 듣고파
남녘으로 날아올까
이제는 저 강을 건너
그리운 부모형제 만날 수 있을까
분단의 아픔 외면한 채
피울음 숨죽이며 끝없이
말없이 흐르던 저 임진강
문호리의 제2 임진강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7천만 겨레의 가슴속에
화합의 강으로 흐르고
문호리의 그 노래는
평화통일의 화신 되어
7천만 겨레 가슴에
큐피트의 화살로 날아가
또다시 제3 제4임진강으로
부활하고 또 부활하여
불멸의 임진강 칸타타가 되리
이렇게 <임진강>은 <임진강2>를 낳고 < 지금 문호리엔 제 2 임진강이 흐른다>라는 시를 낳게 되고..
.......................................
오늘 여기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동호회모임을 위해 헌신적으로 공헌했던 분 미리내.동심초 가객.유성,음악친구
또 그날 문호리 시연회에 참석했던 분들...
초창기에 열심히 활동하셨던 분들
달무리.평화(요셉피나) 나리,모탕. 미르,현빈,소렌,아지.여울....
멀리 제주도의 동산지기님...
그 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나는 지금 그 사람들이 보고 싶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면 이 사이트에서 예전처럼 다시 만나뵙게 되기를 빈다.
동호회원들끼리 나누었던 그 우정
그 우정이 점점 자라 가일미술관의 제1회 신년 아름다운 음악회가 탄생되고 이제 3회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 문득 영남마산 우리가곡부르기 행사를 다시 보며 <임진강>으로 인해 이 사이트가 몰라보게 성장하게 된 일들이 생각나 두서없이 글을 올려본다.
영남마산 6월 우리가곡부르기 행사에서 배우는 노래에 임진강(오숙자 작곡 경동호 최명우시>이 들어 있어 임진강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김경선 원장님은 6월에 <두고 온 내 아들아>와 <임진강>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선곡하신 거 같다.
내마음의 노래 회원들이 전체적으로 천명 안팎일 때 동호회원들의 2002년 송년의 밤이 12월에 있었고 그 때 오 교수님이 처음으로 동호회원들의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작곡가가 아마츄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회원들에겐 큰 기쁨이 되고 가곡사랑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타오르게 동기를 부여해 주셨고 동호회원들과 똑같이 낮은 자세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 회원들은 오 교수님을 구심점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초 가객님이 오 교수님의 노래<임진강>을 듣고 거기에 답시를 남겨두었었고 급기야 교수님은 그 답시로 제2 임진강을 작곡하시게 되고.. 그 당시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글을 올리게 되고 해외에 사는 교포들까지도 그 일에 박수를 보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을 다시 돌이켜보면
...........................
존경하는 오숙자 교수님께 (바다의 글)
오 교수님!
저는 오늘 ‘늘 푸른 바다님께’라는 쪽지 하나를 받고 마치 몰래 짝사랑하던 총각이
보내온 편지를 받은 것처럼 얼마나 가슴이 뛰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만남을 갖게 되는데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좋은 만남도 드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중의 장애를 갖고 있던 헬렌 켈러가 설리반이라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누구도 포기했던 장애를 이겨내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전령사가 되어
전 세계의 모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든지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서
바보가 아닌 똑똑하고 용맹스런 장군이 된 일이나.......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만남이 너무나 많이 있겠지요
저는 지난 번 교수님의 ‘임진강’을 들으며 가객님의 시를 읽게 되고
또 그 밑에 교수님의 답글을 읽게 되었지요.
임진강
경동호 최명우 시 오숙자 작곡
해뜨는 동녘에서 달지는 서쪽으로
이 강산 한허리를 넘실대는 임진강
청산에는 마을 서고 들판에는 풍년들어
굽이굽이 고향인정 저멀리 노을진다.
지금은 슬픈 시절 피리소리 어디갔나
휴전선 가시밭길 울며가는 임진강
이곳은 남쪽이요 그곳은 북녘인가
그리운 고향소식 실어오는 임진강
푸르른 물 무심해도 가이없는 망향노래
소먹이는 아이들도이제는 늙고 없네
지금은 슬픈시절 피리소리 어디갔나
휴전선 가시밭길 울며가는 임진강
☆후렴
아! 아! 강남제비 날아가고 기러기 날아오듯
훨훨훨 훠얼 오가는날 언제이리 그 언제이리
<가객님의 답시>
수천년
고요한 아침을 노래하던
빛나는햇살도 물결에 잠기고
푸르른 빛살도 물살에 쓸리고
단장의 통곡만아 끝없이 흐르네
어이하여
아름다운 이 강토의 허리를 자르는가
순박한 우리겨레의 가슴을 끊는가
수십년 애통의 세월을 흘러가는
서러운 운명이여 비탄의 강물이여
<오 교수님의 답글>
가객님의 절절히 사무치는 답시가 가슴을 일렁입니다.
임진강 후편으로 작곡하고 싶습니다.
가객님은 바로 제2의 창작을 해 주셨어요.
참 기쁩니다.
오 교수님은 임진강에 답시를 보시고 아마츄어 동호회원의 글로 또 하나의 임진강을 작곡하시고
그 해 4월 문호리 집으로 회원들을 초대하셔서 <임진강2> 시연회 겸 집들이를 하셨다.
나는 그 두 분의 만남과 <임진강2>가 탄생됨을 축하하는 시를 써서 시연회가 열리는 시간에 보냈다.
나도 그 당시는 등단하지 않았었고...
지금 문호리에선 제2 임진강 흐른다
지금 문호리에선
너와 나의 가슴 사이에
화해의 파랑을 일으키며
마지막 비탄의 노래되어
제2 임진강이 흐른다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문호리엔
수녀원의 聖召 같은
침묵의 부름 하나 있었다.
하얀 수건 머리에 이고
수녀 같은 마음으로
머문 목련꽃처럼 합장하여
간절히 새벽기도 드릴 때
열려진 가슴엔
올림픽 성화처럼 타오르며
제2 임진강을 노래하라는
거룩한 사명 하나
까만 레일 같은 오선 위로
빨래처럼 널어지며
줄을 서던 음표들이
허리 잘린 강토 민족분단을
아파하기 시작했다.
갈라진 슬픔이 너무 커서
차마 부르지 못한 노래가
농아의 노래되어
몸부림칠 때
선비처럼
다가온 한 歌客
레일 같은 오선 위
농아의 노래에 말을 붙였다
말문 열린 노래 들으려
산새들은 가던 길 멈춰
나뭇가지에
새 둥지를 틀고
지나가던 바람이
햇순을 내민 나뭇가지에
살포시 단잠을 잔다
봄 지나면 저 새는
그 노래 가슴에 담아
북녘으로 날아갈까
여름 지나면 북녘의 새
그 노래 듣고파
남녘으로 날아올까
이제는 저 강을 건너
그리운 부모형제 만날 수 있을까
분단의 아픔 외면한 채
피울음 숨죽이며 끝없이
말없이 흐르던 저 임진강
문호리의 제2 임진강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7천만 겨레의 가슴속에
화합의 강으로 흐르고
문호리의 그 노래는
평화통일의 화신 되어
7천만 겨레 가슴에
큐피트의 화살로 날아가
또다시 제3 제4임진강으로
부활하고 또 부활하여
불멸의 임진강 칸타타가 되리
이렇게 <임진강>은 <임진강2>를 낳고 < 지금 문호리엔 제 2 임진강이 흐른다>라는 시를 낳게 되고..
.......................................
오늘 여기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동호회모임을 위해 헌신적으로 공헌했던 분 미리내.동심초 가객.유성,음악친구
또 그날 문호리 시연회에 참석했던 분들...
초창기에 열심히 활동하셨던 분들
달무리.평화(요셉피나) 나리,모탕. 미르,현빈,소렌,아지.여울....
멀리 제주도의 동산지기님...
그 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나는 지금 그 사람들이 보고 싶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면 이 사이트에서 예전처럼 다시 만나뵙게 되기를 빈다.
동호회원들끼리 나누었던 그 우정
그 우정이 점점 자라 가일미술관의 제1회 신년 아름다운 음악회가 탄생되고 이제 3회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 문득 영남마산 우리가곡부르기 행사를 다시 보며 <임진강>으로 인해 이 사이트가 몰라보게 성장하게 된 일들이 생각나 두서없이 글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