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꿈
자전거 꿈
어릴 때 내가 자란 마을은 평지가 별로 없는 산촌이었다.
강원도를 '비탈'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우리 시골 같은 마을 때문에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산도 밭도 비탈이고 논도 비탈을 계단식으로 만들었으며 집도 대부분 비탈을 파내 지은
것이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탈 수 없는 곳이었다. 탈것이라곤 나무로 판을 짜고
바퀴를 만들어 사람이 끌고 다니는 장난감 '구르마'가 고작이었다.
살던 마을에서 5리 정도는 골(谷)을 타고 내려가야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서 아랫마을에 처음 내려가 자전거며 차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 학교 가는 길에 처음 어떤 아저씨 자전거 뒷자리에 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자전거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과 나무들과 강이 마구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아 어지럽기도 하고 몸이 붕 뜨는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비탈길이 많아 자전거에서 내려 손으로 끌고 가는 곳이 많았으나 그 친구가 부러웠다.
어쩌다 뒤꽁무니에 타보기 위해서는 그 친구에게 잘 보여야했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비켜야 할 사람이 별로 없어도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
친구 자전거를 보며, 난 언제나 저런 걸 타보려나 꿈을 꿨었다.
내가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걸 배운 것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어
전라도 광주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휴일을 하루 앞두고 동기생들이 다음 날
자전거 하이킹을 하자고 했다. 아직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간다고 해 놓고 보니 걱정이 됐다. 가까운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배우기 쉽다며 가르쳐 주마했다. 근처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려와 연병장에서
자전거 타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가 뒤에서 잡아주었으나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밤늦도록 자전거 타는 걸 배웠다.
너무 잘 넘어져 이상하다며 그 친구가 자전거를 타더니 그도 넘어졌다.
알고 보니 빌린 자전거는 뒷 브레이크가 고장나 앞바퀴로만 제동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곤 했던 거다.
다음 날, 나는 자전거를 다른 것으로 빌렸다. 그리고 동기생 몇 명과 함께
30여 Km의 먼 거리 자전거 하이킹을 이상 없이 할 수 있었다.
갈 때는 휘청휘청 진땀을 흘렸으나 올 때는 자신 있게 휘파람까지 불면서.
결혼을 하고 군 숙소에 입주하면서 나는 처음 내 것으로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다.
우마차 길과 논둑 길을 지나 부대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아내는 퇴근할 무렵이면 숙소 앞 길모퉁이까지 나와 내가 탄 자전거를 기다렸고,
날이 어두울 때면 '찌르릉' 자전거 소리에 귀기울였다.
휴일이면 가끔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들판으로 시장으로 달렸다.
아들이 태어난 후, 아내의 관심이 내게로부터 아들 쪽으로 옮겨간 것만큼
내 자전거의 한 자리는 아들 몫으로 옮겨갔다. 아들이 어린 아기였을 때는
자전거 앞쪽에 설치한 유아용 의자에, 좀 커서는 뒤쪽으로 옮겨가면서
아내는 나와 내 자전거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된 지금, 우리 집엔 자전거 한 대가 있다.
기어까지 달린 제법 고급 자전거인데 아파트 베란다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어린 시절 그토록 타고 싶고 가져보고 싶었던 그 자전거가 이제 별 쓸모도 없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한 번 꺼내어 아파트와 건물 숲 속으로 달려보나, 옛날처럼 산이 오고
강이 오질 않는다. 휭휭 지나가는 자동차 물결에 밀려, 가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답답하고 다리만 아플 뿐이다.
이 자전거는 '찌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빠라바라' 나팔소리를 낸다.
한참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와도 길모퉁이에 마중 나와 있는 사람도 없고,
"빠라바라' 소리를 내도 아파트 고층에 있는 아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세월 따라 고무신과 '구르마'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나를 이동시켜주는
나의 발은 발전이 되었지만, 나를 기쁘게 해주고 나를 감동시키는 크기와 빈도는
그 반비례가 아닌가.
아, 자전거를 타고 고향엘 갈까.
아직 비탈이긴 하지만 살던 마을 집 마당까지 찻길이 났으니 갈 때는 주로
끌고 올라가야 하지만 내려올 때는 신이 나겠지.
나를 향해 산이 오고 강도 오고 구름 속을 나는 기분이겠지.
어릴 때 어떤 어른이 나를 태워줬듯 내 지나가는 시골 소년 태워주면
그도 나와 함께 구름 속을 날겠지. 아내는 다시 동구 밖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거나,
' 빠라바라' 내가 돌아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겠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자전거를 보며 난 또 다른 자전거 꿈을 꾸어본다.
'04. 4.
어릴 때 내가 자란 마을은 평지가 별로 없는 산촌이었다.
강원도를 '비탈'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우리 시골 같은 마을 때문에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산도 밭도 비탈이고 논도 비탈을 계단식으로 만들었으며 집도 대부분 비탈을 파내 지은
것이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탈 수 없는 곳이었다. 탈것이라곤 나무로 판을 짜고
바퀴를 만들어 사람이 끌고 다니는 장난감 '구르마'가 고작이었다.
살던 마을에서 5리 정도는 골(谷)을 타고 내려가야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서 아랫마을에 처음 내려가 자전거며 차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 학교 가는 길에 처음 어떤 아저씨 자전거 뒷자리에 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자전거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과 나무들과 강이 마구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아 어지럽기도 하고 몸이 붕 뜨는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비탈길이 많아 자전거에서 내려 손으로 끌고 가는 곳이 많았으나 그 친구가 부러웠다.
어쩌다 뒤꽁무니에 타보기 위해서는 그 친구에게 잘 보여야했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비켜야 할 사람이 별로 없어도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
친구 자전거를 보며, 난 언제나 저런 걸 타보려나 꿈을 꿨었다.
내가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걸 배운 것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어
전라도 광주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휴일을 하루 앞두고 동기생들이 다음 날
자전거 하이킹을 하자고 했다. 아직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간다고 해 놓고 보니 걱정이 됐다. 가까운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배우기 쉽다며 가르쳐 주마했다. 근처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려와 연병장에서
자전거 타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가 뒤에서 잡아주었으나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밤늦도록 자전거 타는 걸 배웠다.
너무 잘 넘어져 이상하다며 그 친구가 자전거를 타더니 그도 넘어졌다.
알고 보니 빌린 자전거는 뒷 브레이크가 고장나 앞바퀴로만 제동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곤 했던 거다.
다음 날, 나는 자전거를 다른 것으로 빌렸다. 그리고 동기생 몇 명과 함께
30여 Km의 먼 거리 자전거 하이킹을 이상 없이 할 수 있었다.
갈 때는 휘청휘청 진땀을 흘렸으나 올 때는 자신 있게 휘파람까지 불면서.
결혼을 하고 군 숙소에 입주하면서 나는 처음 내 것으로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다.
우마차 길과 논둑 길을 지나 부대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아내는 퇴근할 무렵이면 숙소 앞 길모퉁이까지 나와 내가 탄 자전거를 기다렸고,
날이 어두울 때면 '찌르릉' 자전거 소리에 귀기울였다.
휴일이면 가끔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들판으로 시장으로 달렸다.
아들이 태어난 후, 아내의 관심이 내게로부터 아들 쪽으로 옮겨간 것만큼
내 자전거의 한 자리는 아들 몫으로 옮겨갔다. 아들이 어린 아기였을 때는
자전거 앞쪽에 설치한 유아용 의자에, 좀 커서는 뒤쪽으로 옮겨가면서
아내는 나와 내 자전거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된 지금, 우리 집엔 자전거 한 대가 있다.
기어까지 달린 제법 고급 자전거인데 아파트 베란다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어린 시절 그토록 타고 싶고 가져보고 싶었던 그 자전거가 이제 별 쓸모도 없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한 번 꺼내어 아파트와 건물 숲 속으로 달려보나, 옛날처럼 산이 오고
강이 오질 않는다. 휭휭 지나가는 자동차 물결에 밀려, 가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답답하고 다리만 아플 뿐이다.
이 자전거는 '찌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빠라바라' 나팔소리를 낸다.
한참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와도 길모퉁이에 마중 나와 있는 사람도 없고,
"빠라바라' 소리를 내도 아파트 고층에 있는 아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세월 따라 고무신과 '구르마'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나를 이동시켜주는
나의 발은 발전이 되었지만, 나를 기쁘게 해주고 나를 감동시키는 크기와 빈도는
그 반비례가 아닌가.
아, 자전거를 타고 고향엘 갈까.
아직 비탈이긴 하지만 살던 마을 집 마당까지 찻길이 났으니 갈 때는 주로
끌고 올라가야 하지만 내려올 때는 신이 나겠지.
나를 향해 산이 오고 강도 오고 구름 속을 나는 기분이겠지.
어릴 때 어떤 어른이 나를 태워줬듯 내 지나가는 시골 소년 태워주면
그도 나와 함께 구름 속을 날겠지. 아내는 다시 동구 밖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거나,
' 빠라바라' 내가 돌아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겠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자전거를 보며 난 또 다른 자전거 꿈을 꾸어본다.
'0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