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인사...가을의 입구
9. 8(수) 淸明
태풍이 지나간 자리가 푸르다. 주위는 벌써 가을이 와 있는데, 저 매미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지 계속 울어댄다. 이럴 때 가슴이 애리다.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며 옅은 갈색 나뭇잎 사이로 몸을 감춘다. 여름 내 붉은 꽃물을 들여 내던 봉숭아를 오늘 낮 거두었다. 꽃이 피었다 지는 대로 그냥 두었더니 제풀에 씨를 날려 건너 편 척박진 곳에 이제사 몇 송이 또 그루를 솟아 올린다. 안쓰럽다. 저 언제나 꽃을 볼려고. 어제 밤 부산의 해철, 전화가 왔다. 역시 태풍이 지나간 바다가 하늘이 푸르다면서, 언제나 그렇듯 소주를 걸친 목소리다. 바람은 잔데, 파도가 방파제를 때린다고, 기장에 살면서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노라고. 모래는 걸을 일이 생겼다. 설악산의 용아장 능선을 가자는 용국, 어쩌자고 자꾸 거길 가자는 건지, 난 아무래도 그를 올려 보내고 수렴동 계곡길을 오래오래 걸을 것 같은데, 더위가 한 풀 간 산골짝 길을 걸었으면 하는데, 모르겠다, 막상 그날 그곳에 선다면 어떤 마음이 일게 될른지는.
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듯이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
- 이면우 「그 젖은 단풍나무」
김남희. 이제 30대 초반의 여자. 그녀가 국토를 종단하고, 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다. 잔잔한 감동. 해남 토말에서 부터 통일전망대 까지 걸어서 갔다고 한다.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하다만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긴 자세가 너무 예쁘고, 부럽고, 감탄스럽고, 용감해 보이고, 넉넉해 보이고. 또. 또. 또 ‥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치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오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 본문 중에서
울 밖으로 홍시들이 내려와 있어도
그걸 따갈 어린 손목댕이들이 없는 마을,
가을걷이 끝난 古西 들에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핏기 없는 얼굴 같구나
경운기 빈 수레로 털털털, 돌아오는데
무슨 시름으로 하여 나는 동구 밖을 서성이는지
방죽 물 우으로 뒷짐 진 내 그림자
나, 아직도 세상에 바라는 게 있나
- 황지우 「가을 마을」
가을의 입구에서 난 다시 말이 많아진다. 지난 봄,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를 읽으면서, 거기에 적혀 있던 말, “노인이 되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가 떠오른다. 가을이란 노인의 계절일 것, 이 가을을 보려면 역시 일단은 여름을 넘겨야 한다는 말도 된다. 무슨 비장언(悲壯言)인가 싶겠지만, 아름답기로야 여름보담은 가을이 한수 위다. 그러게 인간도 그럴 수 있을랑가? 습! 자연보다 아름다운 인간이 어디에 있을라고?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기고 뛰어도 당해내지 못함이 바로 이런 거다.
가을이 아름다운 건 인간이 해내지 못함을 자연이 하고 있어서 이다. 털고 일어섬. 털기 위해 자신을 말리고 태운다. 그 마지막이 인간들에게 매질을 하고, 죽비(竹篦)로 내리고, 공허함에 떠돌게 한다. 그 말림(乾)으로 눈이 현혹됨은 껍질의 미(美)만 볼 뿐이다.그들이(木) 우리의 완상(玩賞)을 위해 제 색을 바래고 있는 것이라 해 버린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덤 일뿐. 오히려 내 눈 저 곱은 이파리에 가 닿아, 말 못하는 나무가, 발 못 떼는 나무가 어쩌지도 이쩌지도 못하고 선 채로 감내해야 하는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게 황새 따라가는 뱁새의 경우(禮)라 해야 할 것일 것. 목(木)이 아무렴 이쁘라고 변색할까. 잉?
그리고 지난 일요일 밤, 내가 처음으로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해 雨夜 속을 헤집은 것도 비가, 그러니까 가을비라고 부른다면 가을비 일 것이, 낼로 하여금 가을밤 가을비의 정취를 느끼다 못해 아주 물려버리라고 내린 것이 아니라, 저기압의 비구름대가 마침 할일이 없어 여기 하늘을 지나가다가 마침 오줌이 마려워 한 번 갈긴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나는 섭섭할랑가? 허허허.
9. 9(목) 맑음
어제 울던 매미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오늘도 운다. 바래지는 햇볕 속에서.
태풍이 지나간 자리가 푸르다. 주위는 벌써 가을이 와 있는데, 저 매미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지 계속 울어댄다. 이럴 때 가슴이 애리다.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며 옅은 갈색 나뭇잎 사이로 몸을 감춘다. 여름 내 붉은 꽃물을 들여 내던 봉숭아를 오늘 낮 거두었다. 꽃이 피었다 지는 대로 그냥 두었더니 제풀에 씨를 날려 건너 편 척박진 곳에 이제사 몇 송이 또 그루를 솟아 올린다. 안쓰럽다. 저 언제나 꽃을 볼려고. 어제 밤 부산의 해철, 전화가 왔다. 역시 태풍이 지나간 바다가 하늘이 푸르다면서, 언제나 그렇듯 소주를 걸친 목소리다. 바람은 잔데, 파도가 방파제를 때린다고, 기장에 살면서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노라고. 모래는 걸을 일이 생겼다. 설악산의 용아장 능선을 가자는 용국, 어쩌자고 자꾸 거길 가자는 건지, 난 아무래도 그를 올려 보내고 수렴동 계곡길을 오래오래 걸을 것 같은데, 더위가 한 풀 간 산골짝 길을 걸었으면 하는데, 모르겠다, 막상 그날 그곳에 선다면 어떤 마음이 일게 될른지는.
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듯이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
- 이면우 「그 젖은 단풍나무」
김남희. 이제 30대 초반의 여자. 그녀가 국토를 종단하고, 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다. 잔잔한 감동. 해남 토말에서 부터 통일전망대 까지 걸어서 갔다고 한다.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하다만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긴 자세가 너무 예쁘고, 부럽고, 감탄스럽고, 용감해 보이고, 넉넉해 보이고. 또. 또. 또 ‥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치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오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 본문 중에서
울 밖으로 홍시들이 내려와 있어도
그걸 따갈 어린 손목댕이들이 없는 마을,
가을걷이 끝난 古西 들에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핏기 없는 얼굴 같구나
경운기 빈 수레로 털털털, 돌아오는데
무슨 시름으로 하여 나는 동구 밖을 서성이는지
방죽 물 우으로 뒷짐 진 내 그림자
나, 아직도 세상에 바라는 게 있나
- 황지우 「가을 마을」
가을의 입구에서 난 다시 말이 많아진다. 지난 봄,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를 읽으면서, 거기에 적혀 있던 말, “노인이 되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가 떠오른다. 가을이란 노인의 계절일 것, 이 가을을 보려면 역시 일단은 여름을 넘겨야 한다는 말도 된다. 무슨 비장언(悲壯言)인가 싶겠지만, 아름답기로야 여름보담은 가을이 한수 위다. 그러게 인간도 그럴 수 있을랑가? 습! 자연보다 아름다운 인간이 어디에 있을라고?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기고 뛰어도 당해내지 못함이 바로 이런 거다.
가을이 아름다운 건 인간이 해내지 못함을 자연이 하고 있어서 이다. 털고 일어섬. 털기 위해 자신을 말리고 태운다. 그 마지막이 인간들에게 매질을 하고, 죽비(竹篦)로 내리고, 공허함에 떠돌게 한다. 그 말림(乾)으로 눈이 현혹됨은 껍질의 미(美)만 볼 뿐이다.그들이(木) 우리의 완상(玩賞)을 위해 제 색을 바래고 있는 것이라 해 버린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덤 일뿐. 오히려 내 눈 저 곱은 이파리에 가 닿아, 말 못하는 나무가, 발 못 떼는 나무가 어쩌지도 이쩌지도 못하고 선 채로 감내해야 하는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게 황새 따라가는 뱁새의 경우(禮)라 해야 할 것일 것. 목(木)이 아무렴 이쁘라고 변색할까. 잉?
그리고 지난 일요일 밤, 내가 처음으로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해 雨夜 속을 헤집은 것도 비가, 그러니까 가을비라고 부른다면 가을비 일 것이, 낼로 하여금 가을밤 가을비의 정취를 느끼다 못해 아주 물려버리라고 내린 것이 아니라, 저기압의 비구름대가 마침 할일이 없어 여기 하늘을 지나가다가 마침 오줌이 마려워 한 번 갈긴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나는 섭섭할랑가? 허허허.
9. 9(목) 맑음
어제 울던 매미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오늘도 운다. 바래지는 햇볕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