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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鄭宇東 0 1723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    윤    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머리엔 끼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위해 밤낮으로
      앞으로앞으로 진격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지었나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어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다.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아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영운 모윤숙 (嶺雲 毛允淑 1910∼1990) 시인.
함경남도 원산(元山)출생.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 졸업,
배화여고(培花女高) 교사, 중앙방송국 기자 등을 거쳐
1935년 <시원(詩苑)>동인으로 참가하며 시 창작을 시작하였습니
다. 첫 시집인 <빛나는 지역(1933)>에서 민족적인 것에 대한 애정
과 정열을 노래하였고, 그의 대표적인 일기체 산문집 <렌의 애가
(1937)>를 냈습니다. 초기의 <추억> <광야로 가는 이>등에 이어
40년대에도 <초롱불> <대동강> <달 없는 밤에> 등을 발표,
소녀적 감성과 이상주의를 표현하였습니다. 49년 월간 <문예>를
창간하였고, 54년에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창립에 참여하였습니
다. 한국자유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현대시협회 회장을 지
냈습니다.

이 시는 1950년 8월에 쓰였으며, 1951년 문성당에서 간행된 시집
<풍랑(風浪)>에 수록되었습니다. 총 12연 90행으로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숨어지내던 경기도 광주 근처 산골에서 죽
어넘어진 국군의 시체를 보고 썼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작자의 낭만주의와 애국주의가 융합을 이룬 것으로 전
몰용사의 주검을 통하여 애국심을 감동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시의 구조는 유기적 연계를 이루며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2연과 제11·12연은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국군과 시인의
감동적 만남이라는 배경을 나타내주고, 제3∼10연은 국군의 사연
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3연은 죽음을 말하고, 제4·5·6연은 떳
떳하고 후회없는 자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5연은 이 작
품의 주제가 되는 부분으로, 조국과 동포의 행복을 위한 자신의
희생이라는 대승적(大乘的)인 자아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7·8·9연은 뒤에 남은 동포에게 당부하는 말이며 제10연은 결론
으로 조국의 한줌의 흙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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