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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필견 유적지

鄭宇東 0 1974
세계의 필견 유적지

 * 페루 마추픽추 유적
마추픽추(Machupicchu)는 "늙은 산"이란 뜻으로 산과 절벽, 밀림
에 가려 밑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공중도시였습니다. 마츄픽추 유적 뒤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
는 '젊은 산" 이란 뜻의 와이나픽추입니다. 산밑에서는 구름속에
가려진채 존재의 유무마저 의심을 갖게 만들어준 2400미터 산봉
우리 위의 도시 마추픽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교수인
하이렘 빙엄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마추픽추에는 평야가 적었지만,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넉넉히 먹고 살았습니다.
무거운 돌을 날라와 신전과 제단을 쌓고 요새를 축성하였습니다.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으며 그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
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앙코르 와트( Angkor Wat; Vat)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에 위치한
사원으로, 12세기 초에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옛 크메르 제국
의 도성으로서 창건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
교의 3대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도 쓰인 것입니다. 앙코르 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로서,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 기
술이 가장 잘 표현된 유적입니다. 또한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되
면서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관광객들이 캄보디아에 오
는 제1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사원은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황제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약 30년에 걸쳐 축조되었습니다. 사원의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
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사원임을 짐작
케 합니다. 길이 3.6km의 직사각형 해자에 둘러싸여 있는 이 사원
의 구조는 크메르 사원 건축 양식에 따라 축조되었습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 중심인 메루(Meru)산, 즉 수미산이며 주위에 있는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외벽은 세상 끝에 둘
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해자는 바다를 의미합니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에서 파생된 도읍이라는
의미의 노코르(Nokor)의 방언이고,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
이라는 뜻이니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원의 도읍'이라는 의미인 Angkor Wat라는이름은 16세기 이후
부터 사용되었습니다.

 * 이집트고대문명지
세계 4대문명 발상지로서의 이집트는 전세계 어느 유적과 견주어
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역사적인 가치와 연대기를 자랑합니다.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는 전역에 걸쳐 펼쳐져 있기때문에 어느 한
곳을 꼬집어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중의 대표적인 3곳을 꼽는다면
= 기자의 3대 피라미드(쿠푸왕,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와
= 람세스 ii세가 건설한 아부심벨신전은 아스완댐의 건설로 수몰을
    피하여 3200년전의 유적을 분해하여 위치를 70m가량 옮겨 재조
    립하였습니다.
= 그리고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은  피라미드처럼 노출되어 부
    장품이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계곡에 만들어졌습니다.

 * 요르단 페트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90킬로미터 정도 가면 황량한 사막
지대에 산들이 높이 솟아 있는 표고 950미터의 산 속에서 바싹 말라
버린 강을 따라 앞으로 나가면 갑자기 눈앞에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
집니다. 붉은빛을 띤 바위 표면에 건설되어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페트라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바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남요르단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페트라를 만든 사람들은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
아인이었습니다. 페트라는 교통의 요지였던 관계로 언제나 외부의 침
입이 끊이지 않았고 그래서 주민들은 외적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
을 수 있는 거대한 암반속에 주거지와 신전 등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 인도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물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걸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정받는 타지마할을 보
기 위해 인도를 여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중 수많은 관광
객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은 태
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빛깔을 달리해 신비로운 분위기
를 자아냅니다. 둥글고 매끈한 돔에 은은한 달빛이 어리는 한밤의 타지
마할도 몽환적입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왕궁
같은 모습입니다.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
양식의 정원이 펼쳐집니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
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타지마할은 널리 알려진 대로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이 부인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가 39세에 요절한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
모하며 만든 무덤이다. 샤 자한의 두 번째 왕비였던 그녀는 다른 왕비
들의 미모에 비하면 볼품없는 여인이었지만, 대단히 총명하고 지혜로
웠기에 전쟁터에 동행할 만큼 샤 자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합
니다. 왕은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타지마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페르시아 출신의 건축가 우스타드 아마드 라호리
가 설계에 착수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출신 장인을 비롯해
약 2만 명의 일꾼이 동원되었고 라자스탄에서 수천 톤의 대리석이 코
끼리로 운반되고 세계 각지에서 값비싼 보석들을 수입하는 등 천문학
적 비용을 들인 이 대공사는 무려 22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 칠레 이스터섬의 거석상
이스터 섬의 이름은 네덜란드 로헤벤이 1722년 부활절(Easter)에 섬
을 발견한 데서 유래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이 섬
을 육지를 의미하는 라파누이(Rape Nu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터 섬에는 평균 4m 최대 21m에 달하는 모아이 석상이 있는데,
아직도 그 조성경위와 목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불가사의로 평
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터섬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적으로 7세
기경으로 추측하며, 섬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고 돌이나
나무를 조각한 신상을 모시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무보다 돌이 많은 이스터 섬에서는 모아이와 같은 석상이
주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아이의 제작과 조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모아이 조
각상은 대부분 이스트 섬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이고
더구나 화강암은 같은 크기의 다른 암석보다 가벼울 뿐더러, 연한 재
질이어서 조각 하기도 수월합니다. 실제로 모아이 거석상을 만든 조
상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이곳 사람들은,  몇기의 모아이 거석상과
같은 크기의 석상을 만들고, 나무로 굴림판을 만들어 그렇게 크게 힘
들이지 않고 해변까지 옮길 수 있었습니다.

몇몇 신비주의 학자들은, 이 거석상이 고대 뮤 대륙이나 레무리아
대륙의 후손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는 이곳의 원주민 조차 고대 레무리아 대륙 혹은 뮤 대륙의 후손이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외계인 추종자들은, 이스트 섬의 거석상이 외계인이 얼굴이고,
외계인이 직접 만들었다거나, 외계인을 본 이곳 원주민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모아이는 14~15세기에 전성을 맞았고, 이후 테피토크라의
제단에는 높이 11m 추정 무게는 80톤에 달한 모아이의 동상이 세
워지기도 하였습니다.

 * 티베트 포탈라궁
7세기 이래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으로 사용된 포탈라(布達拉)宮
은 티베트의 불교와 전통 행정의 중심지이자 상징입니다. 白宮과
훙궁(紅宮) 및 부속 건물들로 구성된 건물군은 라싸(拉薩) 계곡의
한가운데 고도 3,700m 높이의 홍산(紅山)에 세워져 있습니다.
백궁의 중앙에는 각종 종교의식이 열리는 동대전(東大殿)이 있고
달라이라마의 집무실은 백궁 북쪽 면에 있으며, 맨 위층은 달라이
라마가 개인 공간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백궁의 벽은 종교와 역사
를 주제로 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한편, 홍궁은 백궁의 서편에 있는데, 달라이라마의 유품을 보관하
는 사리탑을 짓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불상과 경
전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홍궁 서쪽의 일광전(日光殿)은
달라이라마의 개인 수도원입니다.

18세기 무렵 건축된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罗布林卡, 
Norbulingka, 보물의 정원)는 티베트 예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또한 7세기 당나라때에 건축된 조캉 사원(大昭寺)은 빼어난 불교
사원이며,라싸의 이 세 유적지는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독창성, 화
려한 장식, 빼어난 경관이 조화롭게 통합되어 역사적·종교적 가치
를 빛내 줍니다.

 * 멕시코 테오티와칸
이곳의 피라미드는 정점이 없으며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
인데 비하여 여기의 피라미드는 신전역할을 하였습니다.
죽은 자의 길끝에는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있으며
달의 피라미 정상에서는 인간의 몸을 달의 신에게 바치는 종교의식
이 행해졌습니다.(16세기 스페인에 점령된 후 금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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