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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문의 시-공성

鄭宇東 0 1495
시가문의 시-공성

詩歌文의 時制性은 의미의 영역을 확대 또는 축소합니다.
창작자는 그의 작품을 과거적 시점, 현재적 시점, 미래적 시점에서 다의
적 또는 중첩적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실상인데도 시제
를 현재에 한정시키는 것은 상상력의 빈곤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E. H. Carr 는 역사를 과거의 유물로만 보지 않고
현재의 시점이나 입장에서 해석하고 다시 쓰야하는 현대사만 있을뿐이라
고 하였습니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맥락
에서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이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상력을 먹
고 크는 예술과 문학에서는 그러한 경계는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조장해야 할 권장사항이기까지 합니다.

상상이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을 마음속으로 그려 내는 일입니다.
인간이 상상을 하는 이유는 인간이 항상 무언가를 새롭게 추구하는 존재
라는 것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없는 것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창조는 인간적 삶의 중요한 본질이 되는데,
상상력은 이와 같은 창조를 이끄는 중요한 정신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이때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원천이 됩니다.

이러한 문학의 상상력은
시간이나 공간으로 확대할때 창작의 영역과 세계를 무한히 확대할 수 있
습니다. 주요한의 요한계시록에서처럼 밥이 쌀이었다가 벼이삭이었다가
볍씨로 변하는 과정을 타임머신을 타고 익히 볼수 있습니다.
또한 성서의 계시문학은 미래의 엄청난 재난을 보여주고 오늘을 성실히
살라고 간절히 권고하고 경계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 공간적을 외연을 확대해가면 나, 우리, 한국의 차원에서 벗어나
전지구적 안목에 이르고, 드디어는 범우주적 자각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나 자각에서라야 汝我一如, 萬物同根, 宇宙가이아假說을
논하는 장이 비로소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진 작시 / 김애경 작곡의
"양수리 연가"의 노래는 작사자의 의도와는 달리 현재의 시점과 시각에서
만 노래불려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시인이 남북간의 분단에서 남과 북이
통일하여 서로 만나는 날을 상정하고 반세기를 넘겨 헤어져 있던 연인들
이 만나 의구심속에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묻는 참으로 애절한
모습입니다.

여기는 꽃도 별도 혼자서 울며 울며 피어나는 곳
헤어져 그린 날들 쓸쓸히 강물처럼 흘러갔어라
아~ 숱한 날 부르던 이름 가슴 깊이 남아 있는데
이제는 너무 아득해 떠오를 듯 사라지는 모습이여
서로 만나 하나 되는 양수리에 오면
꼭 한번 묻고 싶은 말 있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그대 ~ 그대 ~

문예의 창작작품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 일반에게 발표되면 원작가의
의도와는 별개의 독립된 다른 뜻으로 수용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작품의도를 밝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시점에서 출발하여 현재시점에 이르는
복합시제의 노래로 "남과 북"의 주제가가 있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런 정열에 화사한 입
한번 마음두면 변함이 없어
꿈따라 님따라 가겠노라고
내품에 안기어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1983년 KBS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당시 화면이 뜰 때마다
흘러 나오는 배경주제곡이었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폭발적인 반응은 세
계 이목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니 하물며 국내 시청자에서야. 이
를 반증하듯 방송국 건물 벽면은 물론 광장바닥은 온통 이산가족찾기전
단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피 맺힌 열망을 위정자들은 모
른체 하는 무신경이 놀랍습니다.
이 노래는 원래 1964년 한운사의 드라마  "남과 북"의 주제가로 박춘석
이 작곡하고, 가수 곽순옥이 부른 노래로 뒤 이은 동명의 영화의 OST로
불리다가 이산가족방송때 패티김이 다시 불러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작곡가 오동일 선생은 평양 태생인데
언제일지 모르지만 귀향의 그날을 위하여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지상의 한시 送人과 윤유의 대동강 연광정 시조시에 작곡하고 있습
니다. 이 작품은 지난 과거의 시에다 미래의 그날을 위하여 현재의 희
망을 담은 말하자면 全時制的 작품이라고 할 것입니다.

  (고려조 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 : 비 갠 긴 강둑에 풀빛 짙어 가는데
送人南浦動悲歌 : 남포에서 님을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大同江水何時盡 :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려나
別淚年年添綠波 :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보태질텐데

  (이조 숙종때 尹游)
대동강(大同江) 달 밝은 밤에 벽한사(碧漢槎) 띄워두고
연광정(練光亭) 취한 술이 부벽루(浮碧樓)에 다 깨거다.
아마도 관서가려(關西佳麗)는 예뿐인가 하노라.


문학은 역사학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있
어야 할 것, 있을 법한 것을 다룸으로써 무궁한 상상의 세계를 펼
쳐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문학적 상상력은 창작의 측면에서도 매
우 중요하며 독자들의 수용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특히 문학작품의 미덕과 재미는
역사의 사실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성
을 벗어나 시공을 자유로히 넘나드는 상상의 아름다움과 희비가 엇
갈리는 천변만화하는 재미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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