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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충신 열사

鄭宇東 0 1571
충신 열사

 * 최영과 정몽주
500년 왕씨 고려조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최영(崔瑩. 1316~1388)장군은 밖으로는 외적이 침입을 물리치고, 안으로
는 고려왕실을 지키려는 강직한 명장군(名將軍) 이었습니다.
또한 만고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8~1392)는 고려 말기의 문신·
외교관이자, 정치가·교육자·유학자이며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
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이들은 이성계 정도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다 오히려 그들에게 피살되었습
니다. 장군과 선생의 죽음으로 새로운 세력 이성계가 득세하고 위하도에서
회군하여 이씨 왕조를 개창하였습니다.

 * 삼봉 정도전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말 조선초의 정치가·학자로
본관은 봉화(奉化)이고, 자는 종지(宗之)이며, 호는 삼봉(三峰)입니다.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
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습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나 반대세력 이방원(뒤에 태종)에 의
해 제거되어 새 왕조의 개혁의 기상은 퇴조하고 말았습니다.

 * 황희 정승
황희(黃喜, 1363~1452)는 누구에게나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조선조 최장수 재상입니다.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이며 호는 방촌(厖村)으로 , 아버지는 자헌대부 군서(君瑞)
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로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습니
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때로는 관용의 리더십
을 발휘하여, 건국 초기 조선의 안정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밖에도 명재상으로 맹사성 대감과 김재찬 약현대감의 족적이 뚜렷합니다.

 * 사육신과 생육신
조선조 제5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숙부 首陽大君 ( 뒤 세조)에 반대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목숨을 바친 성산문, 이개, 하위지, 박팽년,
유성원, 유응부(김문기라고도 함) 등을 여섯명의 충신을 死六臣이라 하고
그리고 生六臣은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은둔생
활을 했던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
(成聃壽)·남효온(南孝溫)등 여섯 신하들을 말합니다.
 
 *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李舜臣, 1545[인종 1]~1598[선조 31])은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며
조선 선조 때의 명장으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내며 임진
왜란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전란의 역
사에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한 명장이며, 모함과 박해의 온갖 역경 속에서
일관된 그의 우국지성과 고결염직한 인격은 온 겨레가 추앙하는 의범(儀範)
이 되어 우리 민족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 충정공 민영환
민영환(閔泳煥, 1861[철종 12] ~ 1905[광무 9])은
본관은 여흥.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시호는 忠正公 이며
대한 말의 정치가입니다. 민비의 조카로 민씨정권의 세도 속에서 관직에
진출했고, 2차례의 해외여행으로 견문을 넓혀 왕에게 개혁정책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자결로 일제에 항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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