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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노래가 된 詩 -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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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별이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세월이 필요하다. 이별 바로 뒤에는 미련이지만 그 미련 뒤에는 환멸이다. 그러나 다시 세월이 흘러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그 사람의 초롱한 눈매와 뜨거운 입술의 감촉은 다시 아련한 그리움으로 살아나 때때로 가슴을 적신다.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비던 박인환(1926∼1956)의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연인을 잃고,혹은 살아 있는 사람과 이별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화제작이었다.

『첨에는 어우동이라는 술집이었는데 근처 증권회사에 다니는 과장님이 하루는 미쓰리,이집이 어떤 집인 줄 아나? 그러대요.세상에 알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박인환 시인이 드나들던 곳이었어요. 당장 다음날 간판을 주문해서 「세월이 가면」으로 바꿨습니다』

가을 장마가 멈칫하던,여름과 가을 사이의 막간에 찾아든 카페 「세월이 가면」에는 여주인 이소희씨(36)만 오래된 건물의 기둥사이로 나른한 빛이 새어 드는 카운터에 홀로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눈가의 잔주름이 세월을 말해주지만 여전히 젊은 날의 미모와 문학소녀의 순정을 담고 있는 깊은 눈매로 여주인은 박인환을 알아주는 남자를 향해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혔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성당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간 명동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이끼가 낡고 앙상하게 묻어나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의 2층에는 놀랍게도 딜레탕트 박인환의 흔적을 기억이라도 하듯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들어서 있다.
바로 이곳이 전후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명동싸롱」이었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문우들과 어울리다가 계단을 내려와 죽음이 휩쓸고 간 세월의 쓸쓸함을 술로 달래기 위해 맞은 편 대폿집으로 향했다. 동석했던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자 끝내 빼는 바람에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박인환의 친구 이진섭이 제안을 했다. 인환이 니가 시를 쓰면 내가 곡을 붙이겠다고. 이렇게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지만 미처 명확한 단어로 규명하지 못한 「그 눈동자와 입술」을 발굴해냈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세계일보 199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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