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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바리톤의 부전자전 윤치호-윤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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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오페라 '콘서트 인더 파크' 공연 앞둔 윤형씨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활약하는 바리톤 윤형(39.사진)씨가 소프라노 홍혜경씨, 입양한인 베이스 앤드류 갱개스타드 등 한인 성악가와 함께 오는 12일부터 23일까지 뉴욕.뉴저지 공원에서 열리는 콘서트 '메트 인더 파크' 무대에 오른다.

윤씨는 13일 센트럴파크 16일 스태튼아일랜드 스너그하버 22일 뉴저지 블룸필드의 브룩데일파크에서 열리는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발렌틴으로 노래한다. 콘서트를 앞둔 윤씨를 센트럴파크에서 만났다.

◇메트 입성=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에서 시대의상을 입고 수백년 전 작곡가들이 써낸 음표를 울려내는 인간악기(人間樂器). 그들은 객석의 청중을 황홀한 역사 속 신화 속 세계로 안내하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다.
당대의 최고 오페라가수들이 무대에 오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입성한 성악가는 인생의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그 길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철로이다.

바리톤 윤형씨는 미국 이주 12년만인 2004년 메트오페라 무대에 섰다. 한인 주역 바리톤으로서는 최초였다. 그가 '최초'라는 황홀한 수식어를 단 것은 메트가 처음이 아니다. 뉴욕시티오페라.워싱턴오페라.LA오페라.산타페오페라 최초의 한인 바리톤이었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닉스심포니와는 한인 성악가로서는 최초로 협연했다.

"'한인 최초'라는 것이 저를 계속 이 길로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성악가의 길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부전자전=

윤씨가 성악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부친은 명지대 교수를 지낸 바리톤 윤치호씨다. 1남 2녀 중 막내인 그는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다.
성악.기독교는 윤씨 인생의 큰 기둥이다. 일곱살 때부터 교회와 학교 성가대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한 그는 부친의 공연을 보며 자랐다. 집에서 레슨하는 부친의 어깨너머로 레퍼토리를 외면서 위대한 테너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성악가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거의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재능을 소유하셨지요. 유학을 못가셔서 크게 발전하지 못하신 것을 가장 후회하셨습니다. 열심히 사신 모습이 가장 큰 자극을 줍니다."
서울대 성악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윤씨는 4년간 테너로 수업을 받았다. 92년 군 제대 후 보스턴대학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왔을 때 교수로부터 "넌 바리톤이야!"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는다. 교수는 이어 "하지만 늦지 않았어!"라고 격려했다.
윤씨는 테너로 7년간 허송세월한 것을 알고 허탈했지만 그 재능은 공인 받기 시작했다. 고음을 드나들 줄 아는 윤씨의 성량은 오히려 그를 '독특한 바리톤'으로 만들었다.

커티스음대 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친 후 메트오페라 콩쿠르의 내셔널 파이널리스트 설리반어워드콩쿠르 1등 산타페오페라상 커네티컷오페라 장학생을 연이어 수상했다. 도밍고-빌라 영아티스트프로그램에 합격해 워싱턴과 LA오페라단에 입단했고 이어 메트오페라에서 캐스팅 콜이 왔다. 이제 성악가로서 탄탄대로에 진입한 것이다.
윤씨는 지난 11월 식도암과 투병 중인 부친과 산타페오페라의 초청으로 듀오 콘서트를 가졌다. '바리톤 부전자전'의 감동적인 무대였다. 외아들 윤씨는 최근 한국에서 병상의 부친을 만나고 온 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삶과 예술=

"성악가는 유랑극단의 배우와 마찬가지로 힘들지요. 항상 운동하고 목 관리에 신경을 써야하구요."
오페라 가수의 무대 밖 삶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타주 공연이 잦은 윤씨는 때로 1년 중 수개월을 집을 떠나 생활해야 한다. 보스턴 음대에서 피아노와 음악학을 전공한 부인 황현정씨는 윤씨의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내조자. 딸 로다(10)와는 휴대전화 텍스트 메시지를 나누며 정을 확인한다. 부모를 반반씩 닮은 로다는 피아노치며 뮤지컬 노래를 곧잘한다.

윤씨는 메트오페라 공연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간 혼다 파일럿 SUV로 링컨센터에서 뉴저지 이스트브런스윅의 스위트홈까지 달린다. 그의 '애마'는 연습실이자 그가 때로 목놓아 울 수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런던의 코벤트가든 밀라노의 스칼라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도 정복해야죠."

10여년 전 교회 지휘자로 생계를 꾸려가던 시절에 비하면 멀리 달려왔다. 이제까지 오페라 38개 역을 소화해낸 윤씨는 아들 아버지 남편의 역할도 충실하겠다고 다짐한다.
 
중앙일보 New York (200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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