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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삶과 문화] 구하라! 한국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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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채동선의 <고향>은 빅 히트였다. 심금을 울리는 단조 가락에 얹혀진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시로 인해 이 가곡은 당시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불러야 할 노래였다. 그러나 정지용이 월북하면서 그가 지은 시들은 남으로부터 축출당했고 그의 시에 의한 노래들도 금지되었다.

● 멸종 위기 처한 20세기 문화유산
채동선은 <고향>을 구하기 위해, 아니 그 가락을 구하기 위해 박화목에게 부탁,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으로 시작하는 <망향>으로 가사와 제목을 바꿨다. 가사의 대체 가능성이 알려지자 이은상의 <그리워>도 등장했다.

같은 시에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이는 경우는 있어도 같은 가락에 다른 시인의 가사를 붙이는 예는 예술음악에서는 흔치 않다. 일반인들은 노래를 살리기 위한 작곡가의 이러한 행위를 작가적 진정성과 같은 근원적인 면을 거론하며 지탄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수용했다.

이 과정에 가곡의 중요한 보급 루트인 중고교 음악시간과 교과서의 힘이 컸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좋은 노래는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였다. 즉 채동선의 가락은 작곡가만의 것이 아닌 한 시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가곡은 서구 예술음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소화력을 보여준 성공적인 예이다. 유려하면서 서정성 넘치는 선율은 대체적으로 예술적 품위가 있으며, 김순남의 <철공소>와 같은 가곡에서의 실험적인 화성과 극적 표현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일제강점기 생성되어 우리 전통문화에 더해진, 새로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곡. 20세기 초 혼란스런 우리 시대의 정신과 더불어 민족의 여유로운 정서가 담겨진 가곡은 시공을 초월, 우리를 하나의 공감대로 몰아가는 힘을 가졌다. 그리하여 1980, 90년대 <비목> <그리운 금강산> <목련화> 등의 가곡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은 그러하지 않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음악 교과서의 가곡 비중이 줄어든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세대를 잇는 고리가 끊어지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내 마음은> <달밤> <동심초> 등의 명곡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음대 성악과에서 한국 가곡을 가르치지 않는다.

보름 전 한 방송사의 가을맞이 가곡제를 기획, 감독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일부 편곡자들이 가곡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위 내가 아는 국민들이 공감하는 가사와 템포, 뉘앙스를 모르는 이들이 어찌 가곡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알게 모르게 이미 집단 정서로서 양식화한 가곡이 서서히 그 집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 시대정신 담아 회생시켜야
가곡이 회생하는 길은 다시금 사회의 공감대를 얻는 것뿐이다. 구태의연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시대정신을 찾아야 하며, 그 시대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작곡가들은 구태의연한 창작 태도를 버려야 하며 진부한 음악회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시인들은 현대 정서에 맞는 가곡을 위한 시를 지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한 시대의 문화가 멸종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끼던 것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아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황성호ㆍ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일보]2006-10-31 163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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