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가곡이야기
가곡이야기

[리뷰]소프라노 홍혜경 독창회

운영자 0 3465
18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홍혜경 독창회’에 등장한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여왕 홍혜경과 한국팬의 만남은 서먹하게 시작됐다.
홍씨는 소리는 물론 외모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소프라노답게 도발적으로 가슴이 파인 까만 레이스로 장식한 꽃분홍 드레스를 입고 열광적인 박수를 받으며 늠름하게 무대에 등장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사교계의 여왕이던 화려한 비올레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첫 곡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이어 두번째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가운데 ‘그리운 시절은 가고’를 불렀을 때 객석의 반응은 좀 뜨악했다. 절제와 우아미를 갖추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소리와 연기였지만 뭔가가 빠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홍씨가 하얀 드레스로 갈아 입고 다시 무대에 등장, 김동진의 ‘신아리랑’, 김성태의 ‘동심초’, 조두남의 ‘산촌’등 가곡 3곡을 불렀을 때 관객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동요마저 일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듯 두런거리며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면서 마지못해 박수를 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여왕은 역시 여왕이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여자 나이 열다섯이면’과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지난 날이여 안녕’이 끝났을 때 극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함께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비올레타의 노래인 ‘지난날…’은 정확한 곡해석과 응축된 감정으로 관객을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아갔다. 절정의 피아니시모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2부도 1부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채동선의 ‘그리워’,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는 좀 서먹했다. 그리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류의 노래 ‘주인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에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고, 카탈리니의 오페라 ‘라 왈리’중 ‘나 이제 멀리 떠나가리’에서 폭발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홍씨는 그제야 머리를 뒤로 쓸어담고 자신감을 표현하며 말을 했다. “분홍색 드레스가 너무 죄어 숨을 쉬기 어려웠다”고. 홍씨의 가곡은 미안한 말이지만 교감이 쉽지 않았다. 홍씨의 애국심과 향수 등이 어우러져 부른 노래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감동은 없었다. 음악은 역시 이성보다는 감정이다. 정확하고 단아하게 불렀지만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무엇이 터져나오는 그런 시원함이 없는 한국 가곡을 라이브 무대에서 부르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앨범은 다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음반은 이성의 개입여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듯, 라이브 무대에서 홍씨에게 가곡은 앙코르곡이지, 정식 레퍼토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편 독창회에서 반주를 맡은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는 좀 심했다. 리듬을 툭툭 끊으며 관객들의 감상을 방해했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노래를 받쳐 주며, 앙코르곡에서 가사까지 불러주는 순발력을 발휘한 김덕기씨의 깔끔한 지휘는 크게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문화일보] 2003-09-20 / 김승현기자 
 
0 Comments